아직 60세도 되지 않은 환자가 진료실을 찾아왔다고 한다. 이 환자는 기억력이 예전 같지 않아 길 찾기가 어려워졌고 20년 넘게 해 오던 작업이 기억나지 않아 동료들에게 물어보는 일이 부쩍 늘었다고 했다. 진료 결과, 인지행동검사에서는 기억력 저하, 뇌MRI검사에서는 아밀로이드 침착이 확인되었다. 알츠하이머병으로 인한 경도인지장애인 것이다. 이 환자는 최근 증상이 악화되는 것 같아 약 외에 뭔가 더 할 수 있는 것은 없는지 문의하기 위해 내원했다.
작업환경의학 전문의는 다양한 질병에 대한 업무적합성 평가를 한다. 즉, 어떤 질병이 있거나 장애가 있을 때 과거에 했던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지 판단하고 환자가 성공적으로 업무에 복귀할 수 있도록 작업조건의 합리적 조정을 제시한다. 업무적합성 평가 시 마음이 가장 무거운 질병이 인지기능장애다. 기억력, 집중력, 집행능력 등이 저하되어 있으면 과거에 능숙하게 했던 일을 제대로 수행하기 어렵다. 이런 사람들이 기계가 돌아가는 현장에서 작업을 하면 업무수행 가능성 여부를 떠나 안전사고 위험이 증가하기 때문에 본인은 물론 동료, 가족에게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인지기능장애의 가장 큰 원인은 뇌출혈, 뇌경색 같은 뇌혈관질환과 알츠하이머병이다. 내피세포 기능장애와 인슐린저항성은 혈관이 터지거나 막히게 만든다는 점에서 혈관성치매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지금까지 원인 미상으로 알려졌던 알츠하이머병도 뇌세포의 인슐린저항성 및 인슐린 부족에 의해 발생하는 '제3형당뇨병'이라는 가설이 유력하게 제기되고 있다. 다시 말해, 현대인에게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인지장애와 치매는 인슐린저항성이 근본적인 원인인 것이다.
인지장애 관련 상담을 할 때 환자와 보호자에게 인슐린저항성을 개선하기 위해 당뇨병에 준하는 생활습관 관리를 당부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환자와 보호자는 이런 당부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아 안타까움이 매우 크다.
알츠하이머병을 인슐린저항성과 인슐린 결핍이 공존하는 제3형당뇨병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선, 역학적으로 당뇨병 환자에게서 알츠하이머병이 많이 발생한다. 또 알츠하이머병의 주요 병리 소견인 알미로이드 판이나 신경섬유매듭이 당뇨병 환자의 뇌조직에서 흔하게 관찰되며,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뇌에 들러붙는 아밀로이드가 당뇨병 환자의 췌장에 비슷하게 들러붙는 현상도 관찰된다. 이런 현상은 당뇨병이 없더라도 뇌로 유입되는 인슐린 양이 증가하는 인슐린저항성 단계에서 발생할 수 있다. 알츠하이머병 초기에 손상을 받는 뇌의 해마 부위에 인슐린수용체와 인슐린 분비가 감소하는 것이 확인되고, 뇌세포에 인슐린저항성이 생기면 세포의 생존과 기능에 이상이 발생한다.
당뇨병과 알츠하이머병의 세부적인 특징이 밝혀질수록 두 질환 간의 공통점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두 질병은 초기에는 인슐린저항성과 고인슐린혈증, 말기에는 인슐린 결핍이라는 공통 원인을 공유하고 있다.
일부 인슐린감작제성분의 당뇨병약이 인지기능장애 환자들의 인지기능을 개선시켰다는 연구가 있다. 이는 인슐린저항성을 개선시킬 수 있는 다양한 실천들이 알츠하이머병을 포함한 인지장애를 예방하고 치료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스프레이로 비강에 인슐린을 뿌렸을 때 후각신경세포, 삼차신경세포를 통해 대뇌로 인슐린이 전달되면서 기억력이 저하된 노인환자의 인지기능이 개선되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이런 연구들은 알츠하이머병이 인슐린 결핍이라는 특성을 함께 가지고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동시에 치매를 제3형당뇨병으로 볼 수 있는 근거가 된다.
그렇다면 치매나 인지기능 저하를 예방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간단하다. 인슐린저항성을 유발하는 행동을 하지 않으면 된다. 인슐린저항성은 지방을 많이 먹을 때 근육세포 내에 지방이 축적되면서 시작된다. 그리고 설탕을 반복적으로 많이 섭취해도 과도한 인슐린 분비가 계속되면서 말초조직과 노세포의 인슐린저항성이 초래될 수 있다. 유청, 카제인 같은 우유단백질, 고기, 생선, 계란 등 다양한 동물성 단백질도 인슐린저항성과 당뇨병 발생을 증가시킨다. 또 장시간 앉아 있거나 누워 있는 등 신체활동이 감소하면 근육세포 내 지방이 증가한다.
이런 기본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아주 간단하고 상식적이다. 단백질은 식물성 식품을 통해서 섭취하고 지방과 설탕은 최대한 적게 섭취하면서 가공이 덜 된 녹말 식품과 채소, 과일을 충분히 섭취한다. 그리고 매일 1시간씩 운동을 하고 의자에 앉아 잇는 시간을 최소한으로 줄인다. 서 있는 상태로 서류를 검토하거나 책을 읽는 작은 변화만으로도 근육세포 내의 지방을 줄일 수 있다.
2011년 반영된 '천일의 약속'이라는 드라마에는 젊은 나이에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주인공이 나온다. 이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매일 우유 먹을 것, 아침 2잔, 점심 2잔'이라고 적어놓은 메모지가 클로즈업되는 장면이 나왔다. 드라마 방영 당시 치매 예방 차원에서 우유를 열심히 마시려 한다는 사람들을 꽤 많이 만났다. 하지만 그 메모는 광고일 뿐이었다. 드라마가 끝날 때 '제작지원: 서울우유 협동조합' 자막이 메모지가 노출된 회차에만 떴기 때문이다. 우유는 인슐린을 과도하게 분비시켜 인슐린저항성을 초래하고 치매 발생 위험을 높일 수 있는 음식이다. 불필요하게 혈중 인슐린 농도가 올라가는 것만으로도 뇌의 퇴행성 변화가 시작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2012년 한국의 65세 이상 노인 치매 유병률은 9.18%로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치매 전단계인 경도인지장애 환자는 65세 이상 노인 4명 중 1명 수준인데, 매년 경도인지장애 환자의 10~15%가 치매로 진행된다. 더욱 우려되는 점은 한국의 치매 환자 수가 20년마다 2배씩 증가해 2024년에는 100만 명, 2041년에는 200만 명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추세대로라면 지금 태어나는 아이들 2~3명 중 1명은 65세 이후에 알츠하이머병에 걸리게 된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이것이 우리 앞에 놓인 미래다. 우리는 이런 충격적인 현실 앞에서 무엇을 해야 할까? 인지기능을 개선시킬 수 있는 약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일까? 아니다. 그보다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봐야 한다. "왜 이런 비정상적인 문제가 발생했을까?" 지난 수십 년간 정부의 축산 및 육식 장려 정책과 낙농·축산업자들의 광고 덕분에 한국인의 동물성 식품, 식용유, 설탕 섭취량이 각각 10배, 50배, 20배 증가했다. 그 결과 인슐린저항성이 급격히 증가하고, 노인층에서 치매 환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치매의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저지방 자연식물식'을 지금 당장 실천하자.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물론 개인적인 실천만으로 이와 같은 재난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정부가 앞장서서 전 국민의 식단을 획기적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대대적인 캠페인을 벌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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