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탄수화물 식품이 비만의 원인이라는 누명을 쓰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억울한 것은 밀가루가 아닐까 한다.
간혹 밀가루를 끊었더니 살이 좀 빠졌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물어본다.
"정말 밀가루를 끊어서 좋아진 걸까요? 아니면 그 음식에 든 지방, 설탕 등을 안 먹게 돼서 좋아진 걸까요?"
밀가루를 끊었다고 하면서 예를 드는 음식들은 라면, 빵, 과자, 피자 등 매우 다양하다.
일례로, 라면을 많이 먹으면 체중이 증가하고 중성지방, 콜레스테롤, 혈당도 상승한다. 이런 결과가 모두 밀가루만의 탓일까?
"1970년대와 지금 중에서 언제 밀가루를 더 많이 먹었을까요?"
보통은 "지금 더 많이 먹지 않나요?"라고?" 되묻거나 "잘 모르겠어요"라고" 답한다.
우리나라 사람의 1인당 밀가루 섭취량은 1961년에 31.9이었다. 이후 섭취량이 증가해 1972년에 152g까지 달했다가 2011년 142g에 이르기까지 큰 변화가 없었다. 밀가루를 먹으면 살찐다는 말을 철석같이 믿고 밀가루 섭취를 애써 참아왔는데, 지금만큼 밀가루를 많이 먹었던 1970년대 한국인이 더 날씬했다니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1970년대나 지금이나 밀가루 섭취량에 큰 차이가 없다면 왜 당시 사람들은 밀가루를 먹어도 살이 찌지 않았을까?
굳이 밀가루를 끊지 않아도 된다는 건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1970년대와 현재의 밀가루 섭취 방식 차이 때문이다.
1970년대에는 밀가루를 주로 칼국수, 수제비, 술빵 등의 방식으로 먹었다. 당시 밀가루 반죽에는 밀가루, 물, 약간의 소금 이외에 들어가는 게 없었다. 그리고 호박, 감자, 쑥갓 등 다양한 채소를 넣어 끓인 국물에 국수나 수제비를 삶아 먹었다. 계란이 귀한 시절이라 계란을 반죽에 넣거나 국물에 푸는 일은 드물었다. 술빵도 마찬가지다. 밀가루에 막걸리를 넣어 발효시킨 다음 쪄서 만들었다. 빵 맛을 돋우기 위해 설탕을 넣는 일도 없었다. 하지만 요즘 밀가루 음식은 어떤가? 빵을 만들어본 사람이라면 잘 알 것이다. 빵 반죽에는 밀가루, 설탕, 버터, 식용유가 거의 동량으로 들어가고 계란도 필수로 들어간다. 오히려 이 정도만 들어가면 다행이다. 여기에 치즈나 햄 등이 들어간 빵도 부지기수다. 이런 음식을 과연 '밀가루 음식'이라고 할 수 있을까?
라면, 과자, 짜장면, 피자, 치킨 등 소위 밀가루 음식이라 불리는 음식들 치고 순수하게 밀가루 음식인 것은 없다.
다시 말해, 이런 음식들이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은 밀가루가 아니라 밀가루와 함께 먹는 고기, 생선, 계란, 우유, 식용유, 설탕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밀가루만 문제라고 생각하면 함정에 빠질 수밖에 없다.
'밀가루 제로, 100% 옥수수가루 치킨'이라는' 광고를 본 적이 있다. 과연 밀가루 대신 옥수수가루를 썼다고 닭튀김이 건강해질 수 있을까? 이런 속임수는 온갖 글루텐 프리 제품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밀가루나 글루텐성분이 없다 하더라도 지방과 설탕이 넘쳐나고 우유나 계란 등이 포함된 제품이 많다. 글루텐 프리는 건강한 음식의 지표가 될 수 없다. 글루텐 프리든 아니든 체중조절과 건강을 위해 식품을 선택할 때는 지방, 설탕, 유제품, 계란 및 기타 동물성 식품 성분이 얼마나 들어가는지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다시 핵심으로 넘어가보자.
"밀가루를 먹어도 살이 안 찌는가?"
물론 현미나 가공이 덜 된 알곡을 삶아 먹는 것보다 좋지는 않다.
하지만 밀가루 음식에 우유 및 유제품, 계란, 설탕, 식용유, 그리고 육류 및 해산물 등이 포함되지만 않는다면 A- 정도의 점수는 줄 수 있다. 밀가루 음식에 사용된 밀가루가 통밀이면 A까지도 상향될 수 있다. 더 나아가 통밀을 알곡째, 현미나 기타 통곡물 먹듯이 건강한 방법으로 조리해 먹는다면 A+다.
나도 빵을 즐겨 먹는다. 다만 빵을 고르는 원칙이 있다. 성분에 밀가루 외에 소금과 물만 들어간 것을 고른다.
보통 이런 기준을 말하면 "그런 빵이 있나요?"라고?" 되묻는다. 바게트, 캄파뉴, 호밀빵 등은 비교적 안전하게 먹을 수 있다.
그 밖에 각종 천연 발효종을 이용한 빵도 선택 가능한 착한 후보군이다. 단, 구입 시 성분을 확인하고 표기가 불명확하면 유제품, 계란, 유지류가 들어갔는지 직접 문의하는 것이 좋다. 바게트의 경우 간혹 유제품을 넣기도 하므로 구입 시 유제품 유무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건과일이나 견과류가 들어간 발효빵도 큰 문제없이 선택할 수 있지만, 간혹 당절임 과일이 사용된 경우 설탕이 과도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일단 구입해서 맛을 보며 기름이나 설탕이 얼마나 많이 들어갔나 확인한 다음 계속 구입할지 말지 판단하면 된다.
사실 우리가 빵이라고 부르는 음식을 서양에서는 크게 "빵"과 "페이스트리" 두 종류로 구분된다. 빵은 서양에서 bread, brot, pan, pain 등 다양하게 불리는데, 곡물가루와 물을 섞어 만든 반죽을 굽거나 찐 음식을 뜻한다. 그런데 페이스트리는 빵과 달리 반죽에 유지류가 첨가된다. 대체로 빵은 식사용으로, 페이스트리는 후식이나 간식으로 먹는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 둘을 구분하지 않고 다 빵이라 불러 혼란이 생긴다. 나는 빵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페이스트리류를 먹지 말고"진짜 빵"을 먹기를 권한다.
빵 이름에 brot, pain, pan 등이 붙은 것들은 진짜 빵일 가능성이 높으니 세부성분을 검토했을 때 큰 문제가 없다면 먹어도 된다.
또 나는 라면을 금지하지 않는다. 대신 라면의 종류와 먹는 방법을 바꿀 것을 권한다. 라면의 식품 유형에 "유탕면"으로 표시된 것은 손대지 않아야 한다. '건면, 호면, 등으로 표시된 라면 중에서만 고르고, 될 수 있으면 동물성 식품이 포함되지 않은 제품을 선택한다. 그리고 국물은 되도록 먹지 말고 면만 건져 먹기를 권한다.
결론을 내리자면, 식용유, 설탕, 우유, 유제품, 계란, 고기, 생선 등의 '불순물'만 없다면 밀가루 음식은 큰 문제가 없다.
이는 아무리 채식빵, 비건빵이라도 식용유와 설탕이 들어가면 건강과 거리가 멀다는 뜻이기도 하다.
채식이라고 다 같은 채식이 아니다. 건강한 채식을 해야 건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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