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증성 장질환은 장에 원인 불명의 만성염증이 지속되는 질환으로 복통, 설사, 혈변, 체중 감소 등의 증상이 수개월에 걸쳐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대표적인 질환은 궤양성대장염과 크론병이 있다. 궤양성대장염은 주로 대장에 국한해 장점막에 만성염증이 있는 상태로, 대장 중에서도 직장 부위에 잘 생긴다. 크론병은 대장뿐만 아니라 소장과 대장 전 부위에 만성염증이 있는 상태로 점막부터 점막하층, 근육층, 장막층 등 장벽의 전 층을 침범하는 염증이 특징이다.
궤양성대장염은 혈변이 가장 주요한 증상이고 복통, 잔변감, 배변급박감 등이 동반된다. 크론병은 초기에 복통, 설사, 체중 감소가 나타나다가 이후에 혈변, 항문통, 변비, 복부종괴, 발열 등이 동반된다. 크론병의 10%는 항문 증상이 먼저 발생해 수술 후에도 치루가 아물지 않고 재발하기를 반복하다 진단되기도 한다.
두 질환은 연령대에 있어서도 차이가 있다. 궤양성대장염은 30대 중후반 환자가 가장 많고, 크론병은 10대 및 20대 환자가 가장 많다.
염증성질환을 원인 불명의 만성염증에 의해 발생하는 질환으로 정의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 현재 의료계에서는 원인치료가 아닌 증상 조절 치료만 하고 있다. 그래서 환자들은 “이 병은 완치가 없는 병입니다. 평생 함께 가야 하는 병입니다.”라는 말을 들을 수밖에 없다. 심지어 이게 끝이 아니다. 염증성장질환 환자들은 대장암 발생 위험이 정상인보다 2~11배 높다. 염증이 지속되면 암세포 발생 가능성도 증가하기 때문이다.
환자들은 설상가상의 상황 속에서 처방받은 약을 의사의 지시에 맞춰 꾸준히 복용해야 한다. 우선 가장 약한 염증 억제제로 5-아미노살리실란 계통 약물인 설파살라진, 메살라진 등의 약이 처방된다. 설사 증상이 없더라도 약은 계속 복용해야 한다. 염증이 심할 때는 스테로이드를 복용하는데, 스테로이드를 줄이거나 끊어야 하는 상황에서 면역억제제가 처방된다. 이상의 모든 약에 반응이 없을 때는 생물학적 제제로서 항-TNF제제를 쓴다. 여기에 장의 염장을 가라앉히기 위해 혹은 치루가 있는 경우 항생제가 처방된다.
이 모든 치료에도 염증이 조절되지 않아 장협착, 장파열, 심한출혈 등의 합병증이 발생하면 수술을 하게 된다. 대장염증이 심하면 대장 전체를 제거하고 복막에 인공항문을 만들고, 소장에 병변이 있으면 소장부분절제술을 시행한다. 수술을 해도 나머지 장에 재발 우려가 높으므로 꼭 필요한 경우에만 수술을 시행한다.
1986~2005년 사이에 서울 지역의 염증성장질환 발생률을 조사한 연구에서, 궤양성대장염 연평균 발생률은 1986~1990년 인구 10만 명당 0.34명에서 2001~2005년 3.08명이 되었고, 크론병은 같은 기간에 0.05명에서 0.34명이 되었다. 20년간 궤양성대장염과 크론병이 각각 9.1배, 26.8배로 증가한 것이다. 이 연구에서 크론병의 증가는 아주 인상적이다. 연구 첫해인 1986년에는 크론병 진단자가 단 한명도 없어서 발생률이 0이었고 2005년에는 1.68명이었다. 이 연구에서 5년치 연평균 발생률을 계산한 이유는 1980년대에 염증성장질환 발생이 너무 적었기 때문이다.
한편, 2003년에서 2008년까지 6년간 전국의 군 입대 신체검사 대상자들을 대상으로 염증성장질환 발생률을 계산한 연구에서는 궤양성대장염 연평균 발생률이 2003~2004년 1.7명에서 2007~2008년 5.4명으로 증가했고, 같은 기간 크론병 발생률은 1.8명에서 5.1명으로 증가했다. 두 연구 결과에서 궤양성대장염과 크론병의 발생률이 무서운 속도로 증가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급격한 변화 양상을 고려했을 때 한국은 염증성장질환의 원인을 이해하는 데 아주 중요한 위치에 있다. 20년간 한국인이 겪은 변화들 가운데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염증성장질환이 급격히 증가한 원인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 한국의 궤양성대장염과 크론병 발생률은 미국, 캐나다, 뉴질랜드, 호주 등 서구 국가 발생률의 2~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하지만 한국은 아시아 국가 중 서구 국가들의 발병패턴과 가장 유사하게 변해가고 있다.
보통 염증성장질환이 해당 지역에서 발생하기 시작할 때 궤양성대장염이 먼저 증가하고 이어 크론병 발생이 뒤따르다 결국 두 질환의 발생률이 동등해지거나 크론병이 더 많이 발생하게 된다. 이런 추세를 “UC/CD비”로 평가하는데 염증성장질환이 서구화될수록 값이 작아진다. 우리나라는 이 값이 1986년 6.8에서 2005년 2.3으로 감소했고, 군 입대 신체검사를 받은 젊은 남자로 한정하면 그 비율이 2008년 1.1로 더욱 감소했다. 나아가 2000년대 들어 19세 이하 소아 환자들에서는 궤양성대장염보다 크론병이 3.4배 많이 발생하면서 UC/CD비가 0.29까지 감소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환자의 연령이 어려질수록 염증성장질환이 더욱 서구화되는 패턴을 확인할 수 있다. 앞으로 1980년대 중반 이후 출생자들이 사회에서 더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면 이런 변화는 가속화될 것이다.
이를 차단하려면 197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인의 삶이 어떻게 변했는지, 특히 식습관이 어떻게 변했는지 확인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현재 추세대로라면 몇 년 이내에 염증성장질환 발생률이 서구 국가 수준으로 증가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여러 연구에서 염증성장질환 발생 위험을 증가시키는 요인으로 서구화된 식단, 동물성 단백질, 고기, 설탕, 패스트푸드, 지방, 리놀레산, 마가린 등이 반복해서 지적되고 있다. 반대로, 발생 위험을 감소시키는 요인으로는 채소, 과일, 식이섬유 섭취 등이 거론된다.
식이 관련 요인들을 성분으로 나열하면 복잡해 보이지만 음식으로 풀어 설명하면 이해가 쉽다. 고기, 생선, 계란, 우유 등 모든 동물성 식품, 식용유, 설탕 등이 염증성장질환을 유발하는 것이다. 이 음식들은 서구식 식단의 핵심이다. 식단이 서구화되었다는 것은 식단에 이런 음식들이 점점 많아졌다는 의미다. 우리나라의 염증성장질환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원인이 궁굼한가? 그렇다면 지난 수십 년간 우리나라 사람들의 이 음식들 섭취 변화가 어떤지 살피면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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