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우리 몸에서 에너지로 사용되는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에 대해 살펴봤다. 다소 복잡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이 정도로 지적 무장을 해야 장황한 얼치기 논리로 사기를 치려는 사람들에게 당하지 않을 수 있다. 이런 사기꾼들은 꼭 뭔가를 팔려하기 때문에 금방 알아차릴 수 있기는 하지만, 갑작스러운 건강문제로 불안해지면 사고가 마비되어 결국 거금을 쓰는 경우가 많다. 지금부터는 각 영양소가 어떻게 소화되고 흡수되는지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도록 하자.
탄수화물은 입에서 소화되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주로 소장에서 소화가 이루어진다. 침에 있는 아밀라아제가 300~20만 개의 포도당이 결합된 녹말을 포도당 2개가 결합된 엿당으로 일부 분해한다. 이 때문에 밥이나 녹말을 먹을 때 처음에는 맛이 느껴지지 않다가 잘근잘근 씹으면 서서히 단맛을 느낄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아밀라아제는 PH7.0의 환경에서 활성이 최대화되기 때문에 음식을 삼키면 강한 산성인 위산에 의해 활성이 억제된다. 위로 넘어온 음식들은 위에 머물다가, 소장이 영양소를 소화하고 흡수할 수 있는 속도에 맞춰 십이지장으로 넘어간다. 음식물이 십이지장으로 넘어가면 췌장에서 중탄산염과 각종 소화효소를 십이지장으로 분비해 음식물을 다시 중성 혹은 약알칼리상태로 만들고, 췌장에서 분비된 아밀라아제가 녹말을 엿당으로 분해하기 시작한다.
소장점막에서 분비된 말타아제, 수크라아제, 락타아제 등의 효소는 각각 엿당, 자당, 젖당 등을 포도당, 과당, 갈락토오스 등의 단당류로 분해한다. 이렇게 최종적으로 분해된 단당류는 소장에서 흡수되어 혈액순환을 하게 되고 그에 따라 혈당이 상승하게 된다.
소화효소가 분해되지 못하는 일부 올리고당이나 다당류, 식이섬유는 대장까지 내려가 장내 세균의 먹이, 즉 프리바이오틱스 역할을 해 체내 유익균 증식에 기여한다. 따라서 양질의 탄수화물 음식을 먹으면 프리바이오틱스 혹은 프로바이오틱스 캡슐을 따로 먹을 필요가 없어진다.
섭취한 음식의 주성분이 녹말이냐 당분이냐에 따라 혈당이 상승하는 속도가 달라진다. 녹말은 소화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혈당이 천천히 상승하는 반면, 설탕, 액상과당, 각종 시럽 및 엑기스류 등의 당류는 소화 과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흡수되어 혈당을 가파르게 상승시킨다. 이렇게 혈당이 급격히 올라가면 혈당을 적정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 인슐린이라는 호르몬도 급격히 분비된다. 그러면 당장 몸에 필요하지 않은 당분이 지방산으로 전환되고 글리세롤과 결합되어 중성지방 형태로 저장된다. 탄수화물이라도 그것이 녹말 식품이냐 당분이냐, 그리고 식이섬유가 얼마나 많으냐에 따라 인슐린 반응이 상당히 달라질 수 있다.
단백질은 위에서 전처리가 된 후 소장에서 본격적으로 분해되어 아미노산 형태로 흡수된다. 위는 소화 과정에서 특별한 역할을 하지 않지만 입에서 삼킨 음식을 일시 보관하면서 소화가 잘 되게 준비시키는 역할을 한다. 공복상태의 위는 50mL 정도의 크기이지만 음식물이 들어오면 4,000mL까지 늘어난다. 위는 식도에서 넘어온 음식을 잘게 부수고 위액과 섞으면서 죽 같은 미즙으로 만들기 위해 열심히 음식을 주물럭거린다. 이 과정에서 음식은 강한 위산에 의해 살균이 되고, 펩신이라는 효소에 의해 단백질이 폴리펩티드로 분해된다.
위에서 폴리펩티드로 분해된 단백질은 소장으로 넘어가 췌장의 소화효소인 트립신과 키모트립신에 의해 올리고펩티드로 분해되고, 올리고펩티드는 카복시펩티다아제와 엔도펩티다아제에 의해 펩티드 결합이 끊겨 아미노산 혹은 작은 펩티드로 분해된다. 이렇게 잘게 분해된 단백질 성분은 흡수 과정에서 소장벽의 아미노펩티다아제라는 효소에 의해 추가 분해되고 아미노산 혹은 더 작은 펩티드로 흡수되어 혈액순환을 하게 된다.
흡수된 아미노산은 우리 몸의 '아미노산 풀'로 흘러들어가 특정 단백질이 필요할 때 동원되는 재료로 쓰인다. 앞서 살펴봤듯 필수아미노산 필요량은 절대적이지 않다. 비필수아미노산 섭취량이 많으면 자연스럽게 필수아미노산 필요량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몸 안에선 소화관을 통해 흡수된 아미노산뿐만 아니라 기능을 다한 단백질이 분해되어 지속적으로 아미노산 풀로 유입되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특정 아미노산 섭취가 부족해도 쉽게 출렁거리지 않는다. 그래서 식물성이든 동물성이든 다양한 음식으로 충분한 양의 단백질만 섭취한다면 아미노산 불균형으로 인한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
지방은 주로 소장에서 소화된다. 위를 거쳐 십이지장으로 넘어온 지방은 췌장에서 분비된 지방분해효소인 리파아제에 의해 글리세롤, 지방산, 모노글리세리드 등으로 분해된다. 지방은 물에 잘 녹지 않아 리파아제에 의한 소화 효율이 떨어진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간에서 합성된 담즙산이 지방을 1μm 크기의 작은 지방 방울로 유화시켜 지방의 소화를 촉진한다. 이렇게 분해된 지방산 중 탄소사슬 길이가 짧거나 중간인 지방산과 글리세롤은 직접 소장세포에 흡수되어 혈액순환을 하고, 나머지 긴사슬지방산, 모노글리세리드, 인지질, 콜레스토렐 등은 다시 담즙산과 작용해 미포를 형성하여 소장세포로 흡수된다. 흡수된 지방산과 모노글리세리드는 소장세포 안에서 다시 중성지방으로 합성되고, 콜레스테롤, 인지질과 함께 암죽미립이라는 지단백을 형성해 림프계로 분비된 후 흉관을 거쳐 혈액순환을 한다. 혈액순환을 시작한 암죽미립은 매우 빠른 속도로 지방조직과 골격근으로 흡수되는데, 단 5~7분 만에 농도가 절반으로 감소한다. 이는 암죽미립의 중성지방이 당분이나 아미노산보다 먼저 지방조직과 골격근으로 흡수되는 것을 뜻한다. 때문에 장기간 지방을 과도하게 섭취하면 세포에 우선적으로 축적된 지방이 세포의 혈당 흡수를 방해해 인슐린 농도가 점점 상승하는 인슐린 저항성 상태가 되고,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혈당이 조절되지 않는 당뇨병에 이르게 된다.
한편, 소장에서 지방산이 감지되면 위에서 소장으로의 음식물 배출이 지연되어 음식물이 위에 더 오래 머문다. 소장의 지방 소화 및 흡수 속도에 맞춰 위에서 미즙 배출을 지연시키기 때문이다. 지방뿐만 아니라 위에서 위산과 펩신에 의해 일부 소화되는 단백질 또한 위의 음식물 배출을 지연시킨다. 이런 이유로 지방과 단백질이 많은 식사를 하면 음식물이 위에 오래 머물면서 다양한 소화기계 증상이 발생할 수 있다. 위산과 음식물이 뒤섞인 미즙이 위에 오래 머물면 위산과 위점막의 접촉 시간이 길어져 위에 염증이 생기고, 이로 인해 복통, 속쓰림, 소화불량, 식도역류 등의 증상이 발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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